요즘 팀에 이런저런 이슈가 많았다. 나는 나대로 고민이 많았고, 그 고민을 한 번은 글로 정리해두고 싶었다. 거창한 리더십 이야기는 아니다. 감투도 없는 내가 왜 자꾸 팀의 일에 마음을 쓰는지, 그게 과한 건 아닌지에 대한 생각 정리에 가깝다.
시 한 편에서 시작한 생각
자신 안에 자리한 악의 능력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자가 있다자신 안에 커오는 선의 능력을
쉬임 없이 고무시키는 자가 있다그는 어느 쪽인가
나는 어느 쪽인가악은 선을 삼켜야만 연명할 수 있으니
선은 악에 맞서야만 커나갈 수 있으니그러니 선한 이여
악에게 자신을 내어주지 마라
위선을 떨치고 선함을 지켜라진실로 선한 사람은 나쁜 사회에서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좋은 삶을 사는 사람아무리 작아도 선한 존재는
그 자체로 어두운 세상의 등불이니아무리 무력한 듯해도 선한 사람은
선한 존재 자체로 내뿜는 영향력이 있으니진실로 선하게
끝까지 선하게박노해, 「선한 영향력이 있으니」, 『너의 하늘을 보아』
이 시는 좋은 리더를 권한이나 직급이 아니라 그 존재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사람은 자기 안의 악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선을 키워야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존재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본다.
그래서 리더십을 묻는 질문도 조금 바뀐다. "사람들이 내 말을 따르는가?"보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가?" 에 가깝다.
'좋은 어른', '좋은 리더'를 인생의 지향점으로 삼는다면 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앞에서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위치가 올라갈수록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어떤 어른, 어떤 선배가 되어야 할까. 요즘 내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들이다.
감투 없는 자리에서
나는 감투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단 직원도 아니다. 연차에 비해 일찍 리더 역할을 떠안은, 일종의 숨은 리더 같은 위치에 있다. 이런 애매한 자리 때문인지 요즘은 팀 안의 여러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좋은 분위기와 개발 문화를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물론 가끔은 멈칫한다. 내가 중간에서 너무 설치는 건 아닐까. 연차나 직급에 비해 너무 과하게 행동하고, 과하게 고민하는 건 아닐까. 그럴 때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일단 저지르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생각이 엉킬 때 달린다. 러닝과 마라톤은 내게 가장 확실한 생각 정리 방법이다. 요즘 근황도 한몫해서, 한강을 따라 20km를 내리 달린 날도 있었다. 처음 몇 km는 머릿속이 시끄럽다. 그러다 호흡이 일정해지면 엉켜 있던 고민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 글의 상당 부분도 사실 그렇게 달리면서 정리한 생각들이다.

그러다 명절 직전, 오랜만에 예전부터 따르던 실장님과 연락이 닿았다.


"고민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차이 난다", "대충 하지 말고 꼼꼼히 잘해 달라"는 말을 들으면서, 내가 하던 고민이 과한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는 확신이 생겼다. 흔들리던 나의 관념과 철학이 꺾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그 대화 덕분이었다.
하나씩 풀려가는 것들
명절을 보내고 돌아오면서도 팀의 문제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 보니 하나씩, 자연스럽게 풀려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더 고마웠던 건 사람들의 말이었다. 팀장님도, 구성원분들도 자잘한 마찰이든 업무 문제든 나 덕분에 하나씩 해결해 가고 있다고, 나로 인해 각자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고 배우게 된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헛되이 고민한 게 아니었구나, 헛되이 시간을 쓴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다른 회사가 된 지 석 달
법인 간 합병으로 다른 회사가 된 지 벌써 석 달 가까이 되어 간다. 솔직히 말도 안 되게 힘겨운 상황인 건 확실하다. 일하는 방식도, 사람도, 시스템도 한꺼번에 바뀌었고, 그 사이에서 매일 새로 적응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일이 더 재밌다. 새로 함께하게 된 팀에서 내가 티 내지 않아도 나의 진심을 알아봐 주시고, 나라는 사람을 궁금해해 주신다. 애써 증명하려 하지 않았는데도 그동안 일해 온 방식이 먼저 전해졌다는 게 신기하고, 또 고맙다. 힘든 환경에서도 결국 사람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걸 다시 느끼고 있다.
복기하는 습관
연차에 비해 그래도 잘 나아가고 있다면, 그건 아마 복기하는 습관 덕분일 것이다. 바둑기사가 대국이 끝나면 한 수 한 수 복기하듯이, 나는 하루를 곱씹고, 한 주를 곱씹고, 한 달을 곱씹어 왔다. 이건 AI로 절대하지 않는 사항중에 하나다.

개인용 Daily Log와 Weekly Log, Monthly Log에 그날의 일과 회고를 남기고, 다시 돌아보는 일을 꾸준히 이어 왔다. Weekly Log는 What I Learned, Keep, Problem, Try 네 칸으로 쓴다. 큰 장애를 치른 주에는 서비스에서 고쳐야 할 점을 일곱 가지쯤 줄줄이 적었고, 팀 운영 방식이나 운영 안정성을 높이려면 무엇을 시도해야 할지도 같이 적었다.
그렇게 쓴 회고 중에 지금 다시 봐도 마음에 남는 한 줄이 있다.
팀 리더는 다를 게 없다. 명확하게 아는 것과 우선순위를 토대로 판단을 잘하는 것, 공유를 빠르고 제대로 하는 것.
직급이 있든 없든 리더의 일은 결국 이 세 가지라고, 그때의 나는 이미 적어 두었다.
커리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약 3년 반. 남들에게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개발자로서, 언젠가는 리더로서, 그리고 인생에서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계속 묻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이 이제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혼자 잘하기가 아니라 함께 자라기
내가 개발자로 일하는 철학은 '혼자 잘하기'가 아니라 '함께 자라기'다. 초심을 잃지 않고 다 함께 나아가는 것이 늘 소망이었고, 그래서 개발 문화와 협업 문화에 진심인 것 같다.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당연히 있다. 그래도 한 발 물러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유하게 마음먹어야 할 때는 유하게 간다. 개드립을 섞어 설명하더라도 사람들이 웃으면서 잘 이해한다면, 그게 바로 스토리텔링 아닐까. 그리고 솔직히, 그게 재밌다.
돌아보면 늘 그랬다. 실장님이나 CTO님 같은 분들 밑에서 치열하게 일하면서, 저분들은 어떤 사고방식으로 일할까, 어떤 마인드셋을 갖고 있을까를 곱씹었다. 그리고 그걸 나만의 방식으로 체득하면서 좋은 어른이 되자고 다짐하는 게 일상이었다.
아무리 작아도 선한 존재는 그 자체로 등불이 된다고 했다. 감투가 없어도, 연차가 많지 않아도,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진실로 선하게, 끝까지 선하게.
'생각 정리 · 회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함께 자라기에 나도 포함하기 (0) | 2026.10.05 |
|---|---|
| 2026년 상반기 회고 (+ CKA) (0) | 2026.07.13 |
| 4년차에 와서야 정리되는 것들 - 일과 곁의 사람들 (2) | 2026.05.07 |
| 우리가 써내려가는 코드는 시스템의 UX를 고민하고 있을까? (0) | 2026.03.10 |
| 한 해를 돌아보며 (0) | 2025.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