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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4년차에 와서야 정리되는 것들 - 일과 곁의 사람들

by Ramos 2026. 5. 7.

만 3년이 지나 어느덧 4년차에 들어섰다. 시간 감각이 묘하다. 분명 1년이 지났는데, 1년차의 1년과 4년차의 1년은 같은 1년이 아니었다. 가장 큰 변수는 AI다. 매일같이 새로운 모델과 도구가 쏟아지고, 어제까지 한땀한땀 깎던 작업이 오늘은 명령어 한 줄로 끝난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4년차에 들어선 내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경계하고 있는지 한 번 정리해두고 싶었다.

"한땀한땀"이 사라진 자리

예전에는 코드 한 줄, 인프라 설정 한 항목을 직접 깎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지금은 그 비중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렇게 확보된 시간을 나는 다른 곳에 쓴다. 프로덕트의 향후 일정에 대한 대비, 더 견고한 구조로 끌어올리는 개선 작업, 배포/설치 자동화 스크립트를 만들어 팀 전체의 공수를 줄이는 일. 손이 직접 닿는 작업의 결은 옅어졌지만, 시야가 닿는 범위는 분명히 넓어졌다.

돌이켜보면 1~2년차 주니어 시절에 셋업 한 번 하느라 며칠을 태우던 작업들이 이제는 5분 안에 끝난다. 단순히 빨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며칠을 잡아먹던 셋업이 사라졌다는 건, 그동안 "환경 때문에 못 했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비로소 손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줄다리기의 일

대신 한 가지는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컴포넌트의 의존관계를 들여다보고, 확장성을 고민하며, 한 줄 한 줄 직접 리팩토링을 짜내려가던 시절의 그 "고생했다"는 감각과 해결했을 때의 희열은 분명히 옅어졌다. 그 자리는 또 다른 종류의 무게로 채워졌다. 회사의 일정, 팀의 효율, 프로덕트의 견고함, 누적된 기술부채 해소. 이 네 가지 사이에서 매일 줄다리기를 한다. 어떤 날은 일정을 위해 견고함을 조금 양보하고, 어떤 날은 부채를 갚기 위해 일정을 다시 협상한다.

코드 한 줄에서 오던 희열이 줄어든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의 결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4년차의 일은 한 줄의 코드보다, 그 코드가 놓일 자리와 그 코드를 둘러싼 흐름을 정렬하는 것에 더 가까워졌다.

"할 수 없었던 것"이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래서 요즘 가장 재미있는 시간은 따로 있다. 그동안 서버 개발자로서 당연히 해봐야 하지만 환경적 제약 때문에 손을 못 댔던 작업들이다.

  • 시나리오 기반의 부하 테스트
  • API 레벨 복합 QA와 회귀 검증
  • 모니터링 도구로 병목 지점을 실측 데이터 기반으로 찾고, 그 데이터에 근거해 API 성능을 개선하는 일

예전에는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지금 환경에서 안 된다"고 미뤄두던 항목들이었다. 지금은 미루지 않아도 된다. 환경이 바뀌었고, 도구가 바뀌었고, 무엇보다 그 위에서 움직일 수 있는 내 시간이 생겼다. 한땀한땀의 희열이 줄어든 만큼, 추측이 아니라 실측으로 시스템을 다루는 즐거움이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일하는 나, 학습하는 나도 자동화한다

업무뿐 아니라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내 업무 방식과 패턴, 그리고 학습 루틴까지 자동화할 수 있는 영역은 다 자동화하려 한다. 거기에 더해 Claude Code의 remote-control 기능도 적절히 섞어 쓰면서, 언제 어디서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즉시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건 단순히 "편해졌다"의 문제가 아니다. 사고와 실행 사이의 거리가 짧아진다는 건, 결국 사고의 횟수와 실행의 횟수가 둘 다 늘어난다는 뜻이다. 머릿속의 "해보고 싶다"가 책상 앞에 앉을 때까지 살아남아야만 실행되던 시절과, 떠오른 자리에서 바로 실행이 시작되는 지금은 분명히 다른 시대다.

의식하지 않아도 따라오는 경험

새로운 개발을 시작할 때마다 한 번씩 신기해지는 순간이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새 모듈의 구조를 그리기 시작하면, 의식하지 않아도 머릿속 어딘가에서 예전에 직접 겪었던 장면들이 같이 따라 올라온다. 운영 중에 긴급하게 연락받아 현장에서 고생하며 한땀한땀 확인했던 기억, 배포 직전에 한 번 더 확인하지 않아 호되게 당한 흔적, vUser 미흡하게 생각하고 작은 인터페이스 하나 어설프게 정의해 두 달 뒤에 이슈로 돌아왔던 경험. 그 경험들이 새 코드 옆에서 "여기서 한 번 멈춰" 하고 손목을 잡는다.

신기한 건, 이게 의식적인 점검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먼저 떠올린 다음에 반영하는 게 아니다. 새 코드의 라인을 짜 내려가는 동시에 "이건 운영 관점에서 빠지면 안 돼", "이건 나중에 분명 불편해진다" 같은 감각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이전의 고생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코드 옆에 같이 적힌다는 표현이 더 가깝다.

이런 감각은 어떤 도구로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산이라 생각한다. 3년이 그냥 흘러간 게 아니라, 손과 머리에 무엇인가가 분명히 쌓였다는 작은 증거이기도 하다.

외주화하지 말아야 할 것

그래서 4년차의 나는 "할 수 없는 것"을 헤아리는 시간보다 "할 수 있음"을 헤아리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다만,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한 가지 원칙은 1년차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제대로 공부하는 것. 도구가 빨라질수록 그 도구가 만들어내는 결과를 받아 안는 사람의 기준은 더 단단해져야 한다.

그래서 내가 늘 경계하는 두 가지가 있다.

  1. 내가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영역마저 AI에게 외주화하는 것. 도구는 빠른 답을 주지만, 그 답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자리는 끝까지 내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2. 수많은 Task를 빠르게 쳐내면서, 정작 내가 맥락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개념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다음 업무에 넘어가는 것. 처리량은 올라가지만 이해도가 따라오지 못하면, 결국 어느 시점에 그 누락이 한꺼번에 스노우볼로 돌아온다.

이 두 가지는 절대선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속도를 가지더라도, 사고의 주도권과 맥락의 이해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안팎으로 상황이 급변한다. 시장이 바뀌고, 조직이 바뀌고, 우선순위가 바뀐다. 모든 변수에 일일이 흔들리다 보면 정작 손에 남는 건 피로뿐이다. 그래서 나는 시선을 좁히려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만 치열하게 고민하고 집중하는 것. 그렇게 묵묵히 쌓아 나가다 보면, 기회라는 건 결국 그 자리에 찾아온다고 믿는다. 묵묵하게 해나가는 자들이 결국 이긴다는 사실은, 그 어떤 시대의 역사에서도 크게 달라진 적이 없다.

그래서 늘 마지막에 닿는 곳은 변하지 않을 본질이다. 그 본질을 기준점으로 두고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오늘은 뭘 해야 하지? 이번 주는? 다음 주는? 다음 달은? 본질 위에 시간 단위를 쪼개 계획을 얹는 일이 어느새 내 일상의 기본 루틴이 됐다. (계획성이 좀 과한 건 내 성격 탓이긴 하지만...)

일 바깥의 본질 - 곁에 있는 사람들

여기까지 적다 보니, 자칫 일 얘기로만 가득한 회고가 될 뻔했다. 그런데 4년차가 되어 간만에 정리하는 이 끄적이는 회고는 결국 나라는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회고이기도 하다. 일의 결이 단단해진다고 해서 사람으로서의 결까지 자동으로 단단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더 많다.

언제나 내 결정을 묵묵히 지지해주는 가족, 그리고 8시간이라는 시차를 사이에 두고도 멀리서 늘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여자친구. 이 두 축이 없었다면 위에서 적은 어떤 단단함도 지금처럼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반기 목표 중 하나는 분명하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좀 더 챙기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일 바깥의 내가 한 뼘이라도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결국 가족과 여자친구,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향하는 마음을 한 단계씩 더 깊게 다듬는 일과 같은 말이라 생각한다.

특히 여자친구는 내 일상에 다른 결을 더해주는 사람이다. 자칫 딱딱하고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내 일상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 정말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살아 있는 형태로 보여준다. 표현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폭,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내가 부족한 영역들에 다채로운 색을 한 칠씩 덧입혀주는 느낌이다. 4년차가 되어 일의 결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깨닫는 건, 결국 사람의 결이 더 단단해져야 일의 결도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무리

4년차의 일은 한땀한땀의 결을 잃은 일이 아니다. 결의 위치가 달라진 일이다. 코드 한 줄을 깎던 손은, 이제 그 코드가 놓일 구조와 흐름을 깎는다. 직접 만지던 시간 대신 실측으로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생겼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는 거리가 짧아졌다.

그래서 나는 이 시대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두 가지는 분명히 한다. 빨라진 도구 위에서 더 천천히,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마음을 일과 같은 무게로 다듬어 가는 것. 이 두 가지가 4년차의 내가 다음 1년 동안 들고 갈 가장 단단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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