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회고를 쓴다면 이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오래 미뤄둔 작은 목표 하나, CKA(Certified Kubernetes Administrator)를 드디어 땄다. 그런데 이 자격증을 "왜 이제서야" 땄는지를 설명하려면, 결국 지난 반년 동안 내가 무엇 때문에 흔들렸는지를 같이 적어야 한다. 이건 합격 후기라기보다, 빨라진 시대에 기초를 다시 붙잡기로 한 한 사람의 기록에 가깝다.
돌아보기 전에, 요약부터
- CKA를 오래 미뤄뒀다가 올해 상반기에야 취득했다. 바빠서라는 핑계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 몇 차례 이직 시도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나는 지금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는데, 근본 체력은 오히려 비어 있는 게 아닐까"라는 질문이 계속 남았다.
- AI 도구가 내 퍼포먼스를 끌어올릴수록 그 질문은 더 커졌다. 처리량은 늘어나는데, 정작 내가 그걸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가 불안했다.
- 그래서 미뤄둔 공부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같은 AI 도구 덕분에 그 공부를 훨씬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었다.
- 1차에서 컷을 넘기지 못하고 떨어졌고, 원인을 데이터로 분해해 2차에서 합격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실전 팁을 아래에 정리했다.
- CKA는 끝이 아니라 시작점으로 삼기로 했다. CKAD, CKS도 조금씩 이어갈 생각이다.
그래서 왜 이제서야?
솔직히 CKA는 몇 년 전부터 "언젠가 딸 것" 리스트에 올라 있던 자격증이었다. 매일 Kubernetes 위에서 일하고, 클러스터를 설계하고, HA 구조를 다시 짜고, 장애를 수습하는 게 일상이었으니 "이미 실무로 하는데 굳이"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바쁘다는 핑계 반, 실무로 충분하다는 자만 반으로 계속 미뤘다.
그런데 미뤄둔 목표는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무게를 갖는다. 안 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안 한 채로 쌓여 있다. 올해 상반기, 그 무게를 더는 못 본 척할 수 없게 만든 사건들이 있었다.
우연한 이직 시도가 남긴 질문
지난 반년 동안 몇 차례 이직 기회가 있었다. 내가 먼저 문을 두드린 자리는 없었다. 스카우트 제의나 지인의 추천으로 이어진 기회들이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바라던 대로 되지는 않았다. 어떤 곳은 서류에서, 어떤 곳은 면접에서, 어떤 곳은 코딩테스트에서 가지각색으로 막혔다.
(이중에 토스도 있었던건 안비밀...)
처음엔 원인을 밖에서 찾았다. 연차와 회사 규모의 미스매치. 지원 직전에 벼락치기로 준비한 알고리즘 손기술의 부족. 그리고 가장 크게는, 내 성과가 대부분 외부로 꺼낼 수 없는 환경 안에 있다는 가시성의 문제였다. 사내 시스템에만 기록이 남는 정도가 아니다. 일부는 망분리된 폐쇄 환경, 그러니까 보안 규제상 결과물의 외부 반출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영역에서 이뤄진 일이라, 블로그 한 줄은커녕 코드 한 줄도 바깥에 보여줄 수가 없었다. 실력의 증거가 원천적으로 시장에 노출될 수 없는 자리에 쌓이고 있었던 셈이다. 다 맞는 분석이었고, 실제로 본업 역량이 부족해서 막힌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분석들을 다 적고 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질문이 하나 남았다.
"나는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는데, 그 밑을 받치는 기초 체력은 오히려 비어 있는 게 아닐까?"
내가 했던 일들을 나는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결과는 냈지만, 그 결과에 이르는 원리를 남에게 처음부터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붙잡고 있는 걸까. 성과의 속도와 이해의 깊이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는 감각. 그게 이직 실패보다 더 오래 남았다.
AI가 빨라질수록 커진 불안
이 감각을 증폭시킨 건 다름 아닌 AI였다.
요즘 나는 Claude Code를 비롯한 AI 도구를 업무에 깊게 쓴다. 솔직히 퍼포먼스는 이전과 비교가 안 된다. 예전 같으면 며칠 걸릴 셋업이 몇 분이면 끝나고, 반복 작업은 워크플로로 묶어 자동화하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그 자리에서 바로 실행으로 옮긴다. 할 수 있는 일의 총량 자체가 늘었다.
그런데 처리량이 올라갈수록 마음 한편이 서늘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수많은 작업을 빠르게 쳐내면서, 정작 나는 그 맥락을 온전히 따라가고 있는가. 개념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도구는 답을 빠르게 주지만, 그 답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결국 내 안에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이 도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누락은 어느 시점에 한꺼번에 스노우볼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를 절대선처럼 붙들기로 했다. 하나, 내가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영역까지 AI에게 외주화하지 않는 것. 둘, 속도를 얻더라도 맥락의 이해만큼은 양보하지 않는 것. 도구가 빨라질수록, 그 결과를 받아 안는 사람의 기준은 더 단단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단단한 기준"은 결국 기초에서 온다. 여기서 미뤄둔 CKA가 다시 떠올랐다.

그래서 기초를 정면으로
CKA를 다시 꺼낸 건 단순히 자격증 한 줄을 채우려는 게 아니었다. "내가 매일 다루는 이 시스템을, 도구의 도움 없이 맨손으로 얼마나 정확하게 다룰 수 있는가"를 스스로 점검하고 싶었다.
CKA는 그 점검에 잘 맞는 시험이다. 객관식으로 개념을 묻는 게 아니라, 실제 클러스터 앞에 앉아 2시간 동안 kubectl과 YAML과 시스템 명령으로 문제를 직접 푸는 실기 시험이기 때문이다. AI가 옆에서 대신 쳐줄 수 없는, 온전히 내 손과 머리로만 통과해야 하는 환경. 딱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그 지점이었다.
역설적인 건 여기서도 AI가 도움이 됐다는 점이다. 다만 방식이 달랐다. 시험 자체는 맨손으로 봐야 하지만,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그러니까 내 약점을 분해하고 오답의 원인을 구조화하고 반복 드릴을 설계하는 그 학습의 뼈대를 짜는 데는 AI를 적극적으로 썼다. 미뤄왔던 공부를 예전보다 훨씬 높은 효율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AI는 내가 이해를 건너뛰게 만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이해를 더 빨리 붙잡도록 도울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되는지는 결국 쓰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 있었다.
CKA 취득 팁: 1차에서 떨어지고 배운 것들
정직하게 밝히면, 나는 1차에서 떨어졌다. 합격 컷을 조금 넘기지 못했다. 실무를 오래 했으니 무난히 붙겠지 하는 자만이 없지 않았고, 그 자만이 정확히 어디서 깨졌는지가 오히려 좋은 교재가 됐다. 원인을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분해해서 2차에 반영했고, 결과적으로 컷을 넉넉히 넘겨 합격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실전 교훈을 정리한다. (특정 문제의 정답이 아니라, 시험을 운영하는 전략 관점이다.)

1차에서는 컷 66%를 넘기지 못했고, 원인을 분해해 준비한 2차에서 89%로 합격했다.
CKA는 지식 시험이 아니라 "시간, 검증 운영" 시험이다
가장 크게 깨진 착각이 이거였다. 나는 "알면 푼다"고 생각했는데, CKA는 "아는 걸 2시간 안에 순서대로 풀고 검증하는가"를 본다. 내가 1차에서 떨어진 핵심 원인은 지식 부족이 아니라 다음 세 가지였다.
- 시간 관리 실패. 앞 문제에서 시간을 흘리는 바람에, 배점이 큰 뒤쪽 문제 두 개를 아예 손도 못 대고 끝냈다. 풀 줄 몰라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 0점이었다.
- 배점 큰 도메인에서의 부분 실점. 트러블슈팅이 단일 최대 배점(30%) 도메인인데, 여기서 조용히 점수가 샜다.
- 검증 누락. 만들어 놓고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넘어간 문제가 여럿이었다. "apply 했다"와 "풀었다"는 다른데, 그 차이에서 부분 점수를 흘렸다.
배점은 문제 개수가 아니라 도메인 가중치로 들어온다
CKA 도메인 배점을 처음부터 전략의 중심에 둬야 한다.

트러블슈팅과 클러스터 아키텍처 두 도메인이 합쳐서 55%다. 그리고 이 둘이 가장 무겁고 느리다. 그래서 전략은 명확하다. 싼 점수를 먼저 은행에 넣고, 무거운 고배점은 시간 상한을 걸고 공략한다. 만점이 목표가 아니라 합격선(66%)을 안정적으로 넘기는 게 목표다.
당일 2시간을 운영하는 규칙
2차에서 내가 실제로 지킨 규칙들이다.
- 시작 5~7분은 문제를 풀지 말고 전부 훑어라. 배점과 난이도만 메모하며 전 문항을 트리아지한다. 이 6분이 전체 점수를 좌우한다. 배점 높은 문제를 앞쪽 시간대에 배치하지 않으면, 1차의 나처럼 뒤로 밀린 고배점 문제를 미착수로 날린다.
- 쉬운 확정점부터 쓸어 담아 점수를 깔아라. 확보한 점수가 먼저 쌓여 있어야 심리적으로도 안정된다.
- 8분 룰. 한 문제에 8분을 넘기면 골격만이라도 apply 하고 플래그를 걸어둔 뒤 다음으로 넘어간다. 채점은 문항 단위 부분점수제라, "완벽한 1문제"보다 "골격이라도 깔아둔 3문제"가 낫다.
- 고배점 문제는 진입 전에 시간 상한을 먼저 선언한다. etcd 복구 같은 문제는 무한정 빨려 들어간다. "이 문제 최대 N분"을 정하고 들어가야 탈출할 수 있다.
- 모든 문제는 눈으로 검증하고 넘어간다.
get/curl/rollout status중 하나로 결과를 확인한다. 이 한 줄을 강제하는 습관이 1차와 2차를 갈랐다.
트러블슈팅은 지식이 아니라 "고정된 진단 순서"다
배점 30%의 최대 도메인인 트러블슈팅은, 새로운 지식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진단 순서를 손에 붙였는지를 본다. 증상을 보면 첫 명령이 0초에 손에서 나와야 한다. 나는 "증상 → 진단 명령 → 흔한 원인 → 수정 → 검증"을 한 덩어리로 외웠다. 모든 트러블슈팅 문제의 첫 세 줄은 거의 똑같다. 노드 상태를 보고, 비정상 파드를 추리고, describe로 이벤트부터 읽는 것. 추측하지 말고 화면이 말해주는 것부터 본다.
손기술과 도구 세팅이 시간을 만든다
- 리소스 생성의 절반은 명령형 골격(
--dry-run=client -o yaml)으로 뽑고, 필요한 옵션만 편집기로 더한다. YAML 손코딩은 느리고 오타가 많다. - 시험 콘솔에는
kubectl별칭과 자동완성이 이미 세팅된 경우가 많다. 접속 직후 할 일은 재설치가 아니라 동작 확인과 없는 것만 추가다. - 공식 문서(kubernetes.io/docs)는 시험 중 열람이 허용된다. 평소에 자주 쓰는 예제(Gateway API, NetworkPolicy, PV 등)의 검색 경로를 몸에 익혀두면 시간을 크게 아낀다.
한 가지 더: 검증을 통과해도 만점은 아니다
2차에서 나는 문제를 전량 풀고 문제별 검증까지 통과했다. 체감상 거의 만점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점수는 그보다 낮았다. CKA 채점은 문항 단위 부분점수제라, "동작함"은 잡아줘도 "요구조건 100% 충족"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라벨 하나, 필드 하나, 이름 하나의 세부 조건에서 부분 실점이 난다. 그러니 검증 루프로 "돌아가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별개로, 문제 지문의 요구조건을 한 글자씩 다시 대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마무리: 끝이 아니라 시작점
CKA를 손에 쥐고 나서 든 생각은 "드디어 하나 끝냈다"가 아니라 "이제 기준선 하나를 확인했다"에 가까웠다. 내가 매일 다루던 시스템을, 도구 없이 맨손으로도 정해진 시간 안에 다룰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한 것. 그게 이 자격증이 나에게 준 진짜 값어치였다.

묵혀두었던 목표 하나. 2026년 7월, 드디어 이름 옆에 적혔다.
그래서 여기서 멈추지 않으려 한다. CKAD와 CKS도 조금씩 준비해 이어갈 생각이다. 배포와 운영, 보안까지 같은 방식으로 기초를 다시 밟아둘 참이다. 빨라진 도구 위에서 더 천천히,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지난 반년이 나에게 남긴 방향이다.
지금은 조직도 새로운 전환기 위에 서 있고, 앞으로 마주할 큰 통합 과제도 남아 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목표들을 하나씩 이뤄가면서, 그다음을 준비하려 한다. 묵혀둔 목표 하나를 이제야 이룬 이 감각을, 다음 목표의 출발선으로 삼아본다.
PS. 공부 뭘로 했냐면...
- Certified Kubernetes Administrator (CKA) with Practice Tests - Udemy
- Certified Kubernetes Administrator (CKA) - Practical Exam Guide - Inflearn 일프로님 강의
- Kubernetes In Action
기본 개념 박혀있다면 일프로님 강의 일주일 공부하고 들어가도 무방한데... 나는 한김에 제대로 공부하고 들어가느라 Udemy 전설의 강의는 문제풀이만 사용하고 개념적인 사항은 작년부터 실무 + Kubernetes In Action 기반으로 공부했다. 자격증을 위한 공부를 하려고 한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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